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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과 책과 연필, 나무에게서 나오는 것 집에 돌아와 책상 위의 조명을 켜고, 세안을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 입는다. 책상에 앉는다. 앉아서, 향을 피우고 쇼팽의 음악을 튼다. 비로소 나만의 고요한 시간이 온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 순간을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살았는지도 모른다. 은은한 빛과, 은근한 향과,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고요한 음악. 곧 나는 책을 펼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문구에 밑줄을 긋거나, 공책에 옮겨 적을 것이다. 한참동안을 그러다가, 이제 또 한편의 글을 쓸 것이다. 밤에 글을 쓰는 루틴. 이 글쓰기는 내게는 숙면을 보장한다. 무슨 글이여도 좋다. 쓰면 된다. 무엇이든지, 내 이야기가 아닌 것을 쓸 수는 없으니. 나는 글을 쓰면서 나를 발견하고 확인하고, 되짚어 본다. 오늘 향은 선정이다. 자단과 .. 2019. 11. 25.
베르톨트 브레히트, 후손들에게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알게 된 것은 학부시절이었다. 이라는 시로 알게 된 그의 시 몇편을 찾아 읽었던 기억이 있다. 특히 은 당시 내게 너무나도 강렬하여, 단편소설 에도 이 시를 차용하고는 했다. 오래도록 잊고 있다가, 어제 둘러본 박혜수 작가의 전시를 보며 떠올랐다. 사실 나는 이 전시를 예전에도 본 적이 있지만,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인 줄은 몰랐다. 고대 희극에 나오는 연극 대사로만 생각했다. 시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후손들에게(To Those Born Later)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 참으로 나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 간교한 속임이 없는 말은 어리석다. 매끈한 이마는 무감각함을 드러낸다. 웃는 사람은 단지 그가 아직 끔찍한 소식을 듣지 못했을 뿐이다. .. 2019. 11. 22.
만남,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일원 오랜만에 다시,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국현에서 만나 전시를 보고 헤어졌다. 생각보다 춥지 않은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와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내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주어진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하루에 내가 무엇인가를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고, 무엇인가를 남긴다는 것은 나를 확인, 재확인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삶과 별개로 기록을 남기는 삶. 후자는 쉼표에 가깝다. 모든 문장부호는 질량이 없다지만 나는 이 쉼표에 크나큰 질량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직접적으로 살아가는 삶이 치열(熾熱)이라면, 이러한 삶을 되돌아보고 기록에 남기는 삶은 치열(治熱)이다. 치열한 삶과 이를 치열하는 삶. 그 냉각의 역할을 해주는 쉼표 속에 나는 최대.. 2019. 11. 21.
un sospiro, 첫번째 카덴차까지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19. 11. 4.
윷놀이판 만들기 아이들과 함께 이라는 보드게임을 한다. 애니메이션 '신비아파트'의 캐릭터를 활용한 윷놀이 판인데, 신비아파트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을 말판삼아 하는 윷놀이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윷놀이와 같은 룰을 적용하며, 중간중간 화살표를 타고 앞으로 가기도 하고, 뒤로 가기도 하는 철저한 운(運)에 의지한 게임이다. 스피드 마블 윷놀이판 아이들과 서너판을 내리 하자, 아이들이 조금은 지루해한다. 아이들에게 제안 하나를 한다. "그럼. 우리가 한번 만들어볼까?" "윷놀이판을요?" "응. 일단 아이디어를 모아보자." 우리는 집에 있는 화이트 보드 앞에 모인다. 여기에 우리만의 윷놀이판을 만들어보자. 첫째가 '윷놀이 설계도'를 화이트보드 위에 적는다. 음.. 제목처럼 크게 잘 썼구나. 자. 일단 기본적인 모습은 유지하.. 2019. 11. 2.
'알짜'처럼 살기를 원한다 2007년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 정규 수업은 3월부터였지만 우리는 1월부터 방학보충수업의 명목으로 새 학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당시 모든 것이 새로웠고, 또 놀라웠다. 특히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우리에게 닥친 가장 큰 변화는 문과와 이과의 분리 수업이었다. 1학년까지만 해도 같이 어울려 지내던 친구들이 문이과로 나뉘어지고, 그 안에서도 수준별학습이라는 명목으로 반이 갈라졌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화학 선생님이다. 화학 첫 수업,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더니 주변을 말없이 쭉 훑어보신다. 그 분은 늘 멋진 양복차림에 바구니를 하나 들고 다니셨다. 그 바구니 안에는 여러가지 잡다한 것들이 있었다. 회색 직육면체 바구니와 양복. 참 이질적이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2019.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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