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 정규 수업은 3월부터였지만 우리는 1월부터 방학보충수업의 명목으로 새 학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당시 모든 것이 새로웠고, 또 놀라웠다. 특히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우리에게 닥친 가장 큰 변화는 문과와 이과의 분리 수업이었다. 1학년까지만 해도 같이 어울려 지내던 친구들이 문이과로 나뉘어지고, 그 안에서도 수준별학습이라는 명목으로 반이 갈라졌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화학 선생님이다. 화학 첫 수업,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더니 주변을 말없이 쭉 훑어보신다. 그 분은 늘 멋진 양복차림에 바구니를 하나 들고 다니셨다. 그 바구니 안에는 여러가지 잡다한 것들이 있었다. 회색 직육면체 바구니와 양복. 참 이질적이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화학 선생님을 하면 탁 떠오르는 강렬한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 바구니 안에는 여러 크기의 탱탱볼이 있었다. 보통은 수업 시간에, 서로 다른 크기의 분자를 비교하거나 화학반응식을 설명할 때 활용하는 '수업용'이었지만 이와 별개로 졸고 있는 아이를 깨울 때에도 사용되었다. 사실 전자 보다는 후자로 더 많이 사용되었던 것 같다.
가령, 아이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아이의 이름을 호창하고, 이 탱탱볼을 받으라고 던지는 것이다. 이름이 불린 아이는 돌연 잠에서 깨고, 어안이 벙벙한 상태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을 받아야 했다. 교직 경력만큼이나 탱탱볼 던지는 연차가 높았을 화학선생님은 연륜을 발휘하여 학생의 책상에 정확하게 던졌고, 한번에 받지 못하면 공은 어디론가 튕겨 가버릴 것이기에 지루했던 수업 분위기는 돌연 활기를 띠었다.
공이 튀어 다른 곳으로 날아가면 그 부근에 졸고 있던 다른 아이들도 깨울 수 있고, 처음 이름 불린 아이는 공을 주워와 선생님께 드려야 했으므로 이 공던지기는 늘 일석이조였던 것이다.
그래서 여러 해프닝도 벌어졌는데 엉뚱한 학생에게 공이 튀어 애먼 친구가 맞거나(맞은 친구나 그걸 본 친구 모두가 행복해지는 장면), 꾸벅꾸벅 졸고 있던 아이가 천부적인 반사신경으로 아무렇지 않게 잡으면서 선생님 저는 졸지 않았습니다 라고 능청스럽게 말하는 등 선생님이 탱탱볼을 드는 순간 아이들은 모두 즐거운 긴장으로 가득했다.
그런가 하면, 공이 창문 밖으로 튕겨 나가 선생님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는데, 선생님께는 죄송하게도..그 작아지는 눈과 찌푸린 미소가 윤문식과 꼭 닮아, 그 이후 우리에게는 사실 황모 선생님이 아닌 윤문식 선생님으로 통하는 그런..
무튼! 그 선생님과의 첫만남이 기억에 남는다. 첫만남에서 당신은 다짜고짜 다음과 같이 얘기하시는 것이다.
여러분 알짜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알짜' 가 무슨 뜻이었는지를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후였다. 이온에 대해 수업을 하실 때 이 단어가 다시 한번 등장한 것이다. 선생님은 이온방정식을 칠판에 적으시고, 두 이온에 동그라미를 하셨다. 그리고 나머지 이온에는 삭선 표시를 하셨다.
예를 들어 다음의 반응식을 쓰셨다고 한다면,
NaCl(aq)+AgNO3(aq)→NaNO3(aq)+AgCl(s)
이 분자방정식을 완전이온방정식으로 풀어 쓰시고
Na+(aq)+Cl−(aq)+Ag+(aq)+NO3−(aq)
→Na+(aq)+NO3−(aq)+AgCl(s)
두 이온에 표시를 하신다.
Na+(aq)+Cl−(aq)+Ag+(aq)+NO3−(aq)
→Na+(aq)+NO3−(aq)+AgCl(s)
나머지 두 이온에는 삭선 표시를 하면
Na+(aq)+Cl−(aq)+Ag+(aq)+NO3−(aq)
→Na+(aq)+NO3−(aq)+AgCl(s)
다음의 반응식만 남는다.
Cl−(aq)+Ag+(aq)→AgCl(s)
화학선생님은 반응에 참여한 이 두 이온이 '알짜'이온이며, 반응에 참여하지 않은 나머지 이온은 '구경꾼'이온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즉, 반응이 일어났는데 여전히 그대로인 이온과 반응에 참여하여 다른 화합물로 변화한 이온을 구분하신 것, 그리고 첫날 우리에게 해주셨던 말씀을 다시 해주셨다.
구경꾼이 되지 말고, 알짜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도 나는 학창 시절 화학선생님의 이야기를 이따금씩 떠올린다. 과연 나는 당신의 말씀처럼, 알짜처럼 살고 있을까? 아니면 알짜에 반(反)하는 구경꾼처럼 살고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단정짓지는 못하겠다. 다만, 지난 역사 가운데 자신의 몸을 불살랐던 인물들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변화'하는 그 기로에서 빗겨 서 있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선생님의 말씀에 의한다면, 알짜보다는 구경꾼에 기울어진 삶인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알짜처럼 살기를 원한다. 주어진 환경과 조직 속에서, 그러한 삶을 살기란 여간 요원한 게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알짜처럼, 살기를 원한다. 어쩌면 이러한 원(願)이 건다짐으로 그칠수 있다손 치더라도, 나는 알짜처럼 살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화학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저 이온방정식에 답이 있다. 알짜이온처럼 참여하고 변화하는 것. 그럼 어디에 참여하고, 변화하는가? 하루하루의 지극(至極)한 일상 속에, 자신의 삶 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더 나은 변화를 맞아들이는 것. 그렇게 하루를 여닫는다면 우리는 구경꾼보다 알짜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그런 하루가 쌓이고 쌓이면, '가까운 삶'에서 '그러한 삶'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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