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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사정으로,

글 업로드는 1일 1회에서

1주 1회로 조정합니다.

오랜만에 스케치북을 꺼내든다. 무엇을 그려볼까 하다가, 램프를 그리기로 한다. 램프는 초록색 조명. 도서관에서 불밝히고 있는 이 조명은 내게 특별하다. 어린시절 보스턴에 놀러 갔을 때 하버드와 MIT에서 이 조명을 봤던 기억이 '어슴푸레' 있다. 가뜩이나 어린시절부터 은은한 빛을 좋아했던 나는 이 조명의 잔상을 오래도록 간직해왔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시절, 누나가 이 조명을 구해오자 나는 누나에게 조명을 같이 쓰자고 부탁했다. 누나는 뭘 같이 쓰냐며 그냥 나보고 쓰라고 했다. 나는 누나에게 땡큐~ 하고 조명을 내방으로 가지고 왔다. 예전에 쓴 글에서 잠시 등장한 학창시절 내 방에도 이 조명은 등장한다.

 

[일상의 이야기] - 블로그와 글쓰기에 대하여

 

블로그와 글쓰기에 대하여

블로그 어느덧 블로그를 시작한지 한달이 조금 지났다.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무엇인가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서른이 되었고, 이 상징적인 숫자 앞에서 하루하루 나의 생각과 이야기를 남겨보자는 계획이었..

elrelojsintiempo.tistory.com

사진은 대학교때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책상 위에 조명과 파나마모자, 스페인어사전이 있는 것을 보니!

 


 

그리고 한동안 이 조명을 잊고 있었다. 부모님 집에서 나와 살면서 조명을 본가에 두고 나왔는데 얼마 안 지나서 가보니 조명이 없다. 어머니께서 운반 중에 떨어뜨려 갓이 깨져 버린 것.

 

그러다가 올 여름, 연필을 선물받으며 이 초록 조명이 떠올랐다. 그 연필은 팔로미노 블랙윙 811. 이 연필은 도서관에 있는 초록 램프를 본따 만든 모델로써 내가 좋아하는 야광이기도 하다.

 

이 연필은 깎아만 놓고 고이 간직하고 있다. 쓸 때마다 야광도료가 코팅된 부분이 깎여 나가니,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연필을 아낀다는 것은, 그 연필을 잘 쓰는 것이니까, 써야하는 걸까.? 모양과 색, 야광의 빛깔이 좋아 필통에 넣어두고 한번씩 꺼내 어둠 속에서 불을 밝혀보고는 한다.

 


스케치북을 펼쳐 들고 펜(drawliner)을 꺼낸다.

 

펜으로 조명을 그린다. 쓱쓱.

 

색연필로 색칠한다. 금세 완성! 색연필은 prismacolor 색연필.

 

필통에서 아끼는 연필, 팔로미노 블랙윙 811을 꺼내본다.

 

연필을 조명 옆에 놓아본다. 음.. 불을 꺼보자!

 

서서히 빛깔이 올라온다!

 

어둠속에서 밝게 빛나는 연필. 어둠이 짙어지자 연필이 조명이 된다.

  1. 휴식같은 친구 2019.12.14 10:12 신고

    그림 잘 그리셨네요.
    빛이나는 연필까지...ㅎ
    잘 보고 갑니다.

  2. 청결원 2019.12.14 18:16 신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바둑에서 쓰는 용어로 관전팔수(觀戰八)가 있다. 바둑을 둘 때, 당사자는 한두 수 내다본다면, 옆에서 관전하는 사람은 여덟 수를 내다본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럴까. 우선 바둑을 두는 당사자들의 사고(思考)를 바둑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상황에 몰입되어 있기 때문에, 촌각을 다투는 그 치열한 순간들과 거리를 둘 수 없고, 그러다보니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력은 떨어지고, 근시안이 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다. 사안이 중하면 중할수록, 이에 쏟는 신경도 무지막지해져 당면한 문제가 보기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별 것 아닌 일에도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일들 앞에서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좌절감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중하지도 않았던 결정의 지점에서, 너무나 크게 압도되어 오는 선택의 문제에 허둥지둥하며 신중한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나는 바둑의 관전팔수를 메타인지와 연관지어 생각해본다. 학부시절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용어로, 이 부분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떤 희열을 느꼈었다. 메타인지는 결정의 순간에 실수를 줄여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 생활 속에서 좌절과 좌초를 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메타인지의 골자는 바로 거리두기다. 하지만 이 거리두기는 수평적인 이미지가 아니다. 수직적인 이미지로, '위에서 내려다보기'이다.

 

메타인지(metacognition = 상위인지, 초인지)에 관하여

 

상위인지, 초인지라고도 불리는 이 용어는 자신의 인지과정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인지를 한차원 높은 시각에서 내려다봄으로써 이를 관찰하고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위키백과에 기재되어 있는 용어의 뜻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This higher-level cognition was given the label metacognition by American developmental psychologist John H. Flavell (1976).


The term metacognition literally means 'above cognition', and is used to indicate cognition about cognition, or more informally, thinking about thinking. Flavell defined metacognition as knowledge about cognition and control of cognition.

 

[...]


Metacognition also involves thinking about one's own thinking process such as study skills, memory capabilities, and the ability to monitor learning. This concept needs to be explicitly taught along with content instruction. Metacognitive knowledge is about one's own cognitive processes and the understanding of how to regulate those processes to maximize learning.

 

메타인지의 '메타(meta)'는 '넘어서'라는 뜻의 접두사이다.메타인지는 인지에 관한 인지, 생각에 관한 생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메타인지는 교육학적으로 많은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인 문제해결력 뿐 아니라, 자신이 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인 자기효능감, 더 나아가 자아존중감까지도 이어진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조망수용능력과도 연결되며, 구성주의 교육학자인 비고츠키의 비계이론, 근접발달능력과도 맥이 닿아 있다. 언젠가 여기에 언급된 개념들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쓰고 싶다.

 

즉, 문제를 두고 봤을 때 '문제를 해결해야지!'라고 돌진하는 것이 아닌, '이 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 있는가?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라고 잠시 멈춰서 생각할 수 있는 인지능력다. 이는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준다. 풀 수 있는 문제면 방법을 찾아 도전하고, 현재의 능력으로 풀 수 없다면 능력과 여건을 고려한 다른 방법을 찾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메타인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얼마나 면밀하고 객관적으로 내려다보냐 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제 속의 자신과 문제 밖의 자신을 떼어내, 거리를 두는 연습이 필요하다.

 

 

메타인지의 실천에 도움을 주는 것

1. 영상 녹화 2. 시간 기록 3. 글쓰기

 

메타인지란 앞서 말했듯 위에서 내려다보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나를 내려다볼 수 있는 방법에는 크게 영상 녹화와, 시간 기록, 글쓰기가 있다.

 

1. 영상녹화

 

영상 녹화는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자신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나 손짓, 반복해서 말하는 어구, 당황했을 때 등장하는 나만의 신호들. 이러한 것들은 그 행동을 직접 취하고 있을 때(즉, 상황 속에 있을 때)는 스스로가 결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설혹 안다고 하여도, 그 빈도와 정도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가령 나의 경우 학부시절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 담당 선생님께서 수업 영상을 모두 촬영해주셨다. 그전까지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습벽들에 대해서 결코 알 수 없었다. 두 손을 모으고 수업을 하는 것은 내 딴에는 학생들에 대한 겸양의 표현이었지만 수업을 할 때 교사가 지녀야 할 전문적인 느낌은 떨어졌다. 학생들이 치고 들어오는 질문들을 일일이 답변해주는 것에 대해, 자율적이고 소통이 잘 이루어진 수업이라고 자평했지만, 영상을 보면서 나는 생각을 고쳐 먹었다. '한정된 수업 시간에 질문에 일일이 답변을 하는 것은 수업의 효율성과 연속성을 떨어뜨릴 수 있겠다'는 것. 단어가 갑자기 떠오르지 않을 때는 무의식적으로 마이크를 만지작거렸고, 판서를 할 때는 학생들을 등지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만일 선생님께서 영상으로 남기지 않으셨다면 결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말로 설명듣기에는 피차 민망하기도 하고, 그렇게 설명들었다 해도 크게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나는 종종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었다. 대학교 1,2학년 때였다. 무엇을 고쳐야지!라는 생각으로 남긴 것은 아니었지만, 이때 남긴 영상들을 보면서 나는 나를 '내려다볼 수 있게' 된다. 상대적으로 힘을 잘 못 쓰는 손가락이 어떤 부분인지, 마디와 마디, 음표와 음표를 연결할 때 곡의 어디에서 매끄럽지 못한지도 알게 되었다. 이 영상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채로 고이 간직하고 있다. 아. 최근에 한번 누군가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산책을 하다, 피아노 이야기가 나왔을 때.

 

당시에 남긴 영상 캡처

 

2. 시간기록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어떻게 하면 지루하고 고달픈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하다가 나는 내가 보낸 시간들을 기록에 남기고는 했다. 이것은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오늘의 나를 위로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내일은 무엇을 해야지!'하고 계획을 세워도,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 늘 마음이 불편했던 것. 그리하여 나는 '내일은 무엇을 해야지!'가 아닌, '오늘은 무엇을 했지!'의 개념으로 시간을 기록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오늘 보낸 시간을 기록하게 되면, '내일의 오늘'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감이 선다. 그렇게 '내일의 오늘들'에 대해 계획 아닌 계획을 세우면서, 나는 거진 만족스러운 나날들을 보냈다. 한번도 계획을 망친적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 계획을 세우며 살지 않았기 때문.

 

물론 모의고사나 정기고사, 수능이라는 거대한 시험들에 대해 큰 청사진은 있었지만, 이 청사진을 하루 단위로 쪼개 만들지 않았다. 다만, 내가 살아온 하루하루의 시간을 기록했다. 이때, '시간을 보내는 나' 위에는 '시간을 기록하는 나'가 있었다. 이 둘의 관계는 메타인지의 주체와 대상. 고달팠던 고3 수험기간을 그럼에도 빠르게 보내버릴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메타인지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2008. 9. 8 (월) 수능 D-66 기록

 

2008. 11. 3 기록

3. 글쓰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손 쉽게' 할 수 있는 메타인지 실천법은 바로 글쓰기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하는 자기' 위에서 '글쓰는 자기'의 시선으로 단어를 선택하여 정리하는 일이다. 감정은 누그러질 것이고, 이성은 더 차분해진다. 왜냐하면, 내 속에서 나를 요동치게 했던 수많은 생각들과 상념들, 때로는 고민들과 걱정들 모두 '글'이 되는 순간, 지금의 나보다 더 아래 차원으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단어들, 조합한 문장들과 배열한 문단들에 의해, 나를 괴롭히거나 들뜨게 했던 마음들은 나에게서 벗어나는 것. 엄밀히 말하면 그 마음의 주체에서, 글쓰는 주체로 내가 옮겨 오는 것.

 

이렇게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과잉된 감정을 글이라는 체에 밭칠 수 있다. 이러한 글쓰기를 통한 메타인지 실천이 좋은 점은 또 하나 있다. 자신의 진짜 감정과 가짜 감정을 구별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글쓰기 이후에 남아 있는 감정들을 '살아남은 감정들 (feeling survived)'라고 명명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 글로 정리하였음에도 마음이 남아 있다면, 이 마음은 진짜 마음인 것이다. 기분 좋은 일에 대해 들떠 있다가도 글을 쓰면 얼마간은 차분해지는데, 그 이후에도 잔잔한 여운이 알맹로 남아 있다면 이 역시 feeling survived이다. 화가 나고 부조리한 일들에 대해 글을 쓴 후 여전히 안 좋은 감정이 앙금으로 남아 있다면 이 역시 feeling survived이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면 마음은 마음대로 진정되고, 여러 마음들이 걸러져서 '살아남은 감정'들만 남게 된다. 그 살아남은 감정들에 대해서는 늘 좋이 간직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의 진짜, 진짜인 나를 구성하는 진짜는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1. 휴식같은 친구 2019.12.13 09:29 신고

    메타인지가 미리 내다보는 능력이군요.
    바둑에 비유하니 기억하기가 쉽네요.

    • he_hesse 2019.12.14 00:37 신고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둑의 관전팔수. 확 와닿지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2. 메타인지 실천법이 글쓰기라고 하시니 저도 글시가 연습을 많이 해야 겠습니다.
    좋은정보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기분좋은 휴일 되세요.

    • he_hesse 2019.12.14 13:18 신고

      아무래도 글을 쓰다보면~ 나 자신을 내려다 보는 느낌이 드는 것 같습니다^^ 방문 댓글 감사드려요~

  3. 아웃룩1000 2019.12.14 01:48 신고

    글쓰기에 더 많은 시간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네요.

    • he_hesse 2019.12.14 13:17 신고

      저도 틈틈이 꾸준히 써보려고 한답니다^^ 방문 댓글 감사드려요~

수요일, 퇴근 후 시간을 내어 국현을 찾는다. 주변 갤러리도 모두 문을 닫았을 것이고, 만날 사람도 없는데 기어코 간다. 만날 사람도 없다는 말을 풀어 쓰면 보고싶은 깊은 마음과 그러면서도 볼 수 없는 것을 알지만 혹시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겹겹으로 쌓인 마음. 누군가가 그리울 때는 그이와 관련된 일들, 곳들, 것들을 톺아본다. 그러면 일순간 괜찮아진다. 그 마음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추운 밤거리를 쏘다닌다.

 

국현에서 나와 정독도서관으로, 정독도서관에서 갤러리 담을 지나 도트블랭킷으로 간다. 따뜻한 라떼 한잔을 마신다. 몸이 차가왔는지 라떼가 몇모금 들어가자 마치 뜨거운 온천수가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이다. 몸은 금세 따뜻해진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도트블랭킷은 각기 빛의 국현이고 빛의 카페다. 국현은 밝았고 카페는 따뜻했지. 둘 모두 밝고 따뜻한 빛의 속성을 갖고 있다.

 

다음은, 어제 만난 밤의 모습들.

 

빛의 국현

은은한 빛

 

빛의 국현

달 넷

 

빛의 국현

 

빛이 너울지는 담은,

바람 부는 날의 천 같기도

 

빛의 국현

정독도서관 가는 길

 

어제는 만월(滿月)이었다. 곳곳이 달이었고 곳곳에 달이 있었다. 이 달은 뭘까~?

 

어느 숲에 불시착한 달이라고 해두자. 다행히 깨지거나 터진 곳 없이, 안전하게 숲속에 불시착한 달. 

 

갤러리 담. 문은 닫았지만, 창을 통해 내부의 전시를 힐끗 본다.

 

빛의 카페다!

 

빛의 카페

조명 하나

 

자기주도적인

부끄럼 많은 새앙쥐

 

어두운 밤에,

숨을만한 쥐구멍 찾기 위해

열심히 불 밝히며

이리저리 찾고 있다.

 

부끄러워 쥐구멍에 숨을 거라면,

차라리 불을 끄는 게 낫지 않니!

 

그러면 추워서.

 

부끄럼도 많이 타고

추위도 많이 타는

새앙쥐.

 

빛의 카페

조명 둘

 

무슨 모양일까

가리비? 문고리?

 

따뜻한~ 라떼 한잔

 

사이아트에서 또 새로운 전시를 하고 있다.

 

meta-discourae라.. 메타가 들어간 단어들이 떠오른다. 메타소설, 메타인지. 언젠가 메타인지에 대해서 글을 써보려 한다.

 

같은듯 다른듯

 

두 조명이 대화한다.

 

"우리 정말 모양이 닮았어!"

 

"그렇네. 잠시만.

그런데 조명 빛이 다르잖아"

 

"그렇네. 잠시만.

피차 빛인 건 같잖아!"

오늘 오후, 미세먼지가 걷히면서 시정(視程)이 좋아졌다. 미세먼지가 걷히게 된 것은 바람 때문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미세먼지가 날아갔고, 이로써 시정이 좋아진 것. 시정이 좋아진 때문에 비행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세찬 바람을 맞으며 비행한 것은 처음이었다.

 

처음, 시운전을 하기 전까지 비행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타워에서 불러주는 바람의 속도는 제한풍속에 1노트 미치지 못했다. 타워에서 알려준 내용은 gust 34노트. 34노트의 돌풍이 분다. 키로미터로 환산하면 시속 약 63km. 정조종사분은 비행합시다, 했다. 우리는 비행을 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 비행을 하는데 애를 먹었다. 공중에서 비행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상에 내려와 방향을 바꾸는데 쉽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었다. 활주로 상에서 항공기를 정지시키고, 180도 선회를 할 때였다. 좌측 페달을 아무리 밟는데 항공기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바람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자, 항공기의 기수는 팩 하고 돌아가더니 공중에서 걷잡을 수 없이 출렁거린다.

 


그런데 정조종사분은 대뜸 내게 이러는 것이었다. 나 안 잡을 거야. 자기가 알아서 해. 그 분은 꼭 친근한 표현으로 상대를 지칭할 때 '자기'라고 한다. 글로 읽으면 어딘지 이상하지만, 대화 중에 들으면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외려 정겹기까지 하다. '나 안 잡을 거야. 자기가 알아서 해.' 라는 얘기를 듣는데 순간, 배려의 또 다른 모습은 이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은, 그러나 정 반대이기도 한 상황은 예전에도 꼭 한번 있었기 때문이다.

 


 

항공학교에서 학생조종사로 있을 때,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날 비행을 한 적이 있었다. 오전까지만해도 잠잠했던 바람이 오후가 되자 점점 세차진다. 하필이면 평가 비행이 있는 날이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활주로에서 제자리선회를 하려는데 항공기가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페달을 힘주어 밟으면, 그 반작용으로 항공기는 내 발을 밀어냈다. 그래도 선회는 해야 하므로, 힘을 서서히 주는데 오늘의 상황처럼 갑자기 항공기가 돌아가면서 공중에서 이리저리 출렁거리는 것이다. 그때, 평가관님이 조종간을 낚아채면서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항공기를 부드럽게 착륙을 시키면서 내게 이러시는 것이었다. "내려."

 

나중에 평가관님께 디브리핑을 하면서,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항공기 안에서 조종간을 잡고 있다면, 어느 순간에도 조종을 포기하면 안된다는 것. 당시의 나는 그렇게 항공기가 휘청거리는 것은 처음이었고 당황했던 터, 큰 사고로 이어지기 전에 평가관님께서 조종간을 잡아주신 것이다. 항공기와 조종사의 안전을 위해, 평가관님이 배려해주신 것이다.

 


오늘도 그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아니, 어쩌면 바람은 더 심하게 불었고, 항공기가 돌아가는 속도와 공중에서 휘청거리는 정도는 더 했다. 그런데 같이 타신 정조종사분은 조종간을 잡고 있는 나에게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두셨다. 다른 내용이었지만 이또한 나를 배려한 것이라 느껴졌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조종간을 붙들고 항공기를 안정시켰다. 

 

바람 부는 날의 비행. 항공기 안에서 이 거대한 철제기계의 '입질'을 느낀다. 바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육중한 생명체의 큰 뒤척임을 낚시대 하나로 견디는 것처럼, 바람 속에서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항공기의 동요를 조종간 하나로 견디고, 차분하게 진정시킨다. 어쩌면 헤엄치는 고래 등에 올라 타면 이런 느낌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바람 속에서의 항공기는 예상할 수 없는 움직임의 연속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기류와, 항공기의 로터 블레이드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바람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항공기가 공중에서 맥을 못추는 것.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항공기가 좀처럼 잠잠해지지 않는다. 조종간과 페달에 반사적으로 힘을 줬다 빼면서, 항공기를 차분하게 만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행실력도 중요하겠지만, 이보다 더 심층적인 것이 있다. 그것은 앞서 말한 '나 안 잡을 거야. 자기가 알아서해야해'라는 말이다. 나는 이 말에서 정조종사의 부조종사에 대한 믿음이 느껴진다. 나는 이 얘기를 듣는데 다음과 같이 들렸다. '나 부조종사를 믿으니, 안전하게 비행해'라고. 조종사에게 조종간을 맡기는 것보다 더 큰 신뢰와 배려가 있을까. 남은 비행 내내, 날은 춥고 바람은 불고 항공기는 이리저리 휘청댔지만 마음만큼은 흔들림 없이 꽉 차 있었다.

 

 

  1. 가족바라기 2019.12.12 07:32 신고

    정조종사님이 부종조사님을 믿는 마음이 글을 읽으면서 느껴지네요
    따뜻한 글 잘읽고 갑니다^^

    • he_hesse 2019.12.12 17:52 신고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웠지만, 저역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던 순간이었어요. 남은 하루 잘 마무리하세요~^^

  2. 휴식같은 친구 2019.12.12 08:36 신고

    비행기를 조정하시는 일을 하시나봐요?
    멋집니다. 비행 시 날씨 영향이 제일 크다는데 항상 안전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 he_hesse 2019.12.12 17:52 신고

      그래서 늘 날씨에 민감해요. 안전 유의하겠습니다^^. 방문, 댓글 감사드려요~

  3. 청결원 2019.12.12 13:36 신고

    날씨 또 많이 추워졌네요..

    건강 유의 하시고 오늘 역시 포스팅 잘보고 갑니다

    • he_hesse 2019.12.12 17:53 신고

      청결원님도 추워진 날씨 속에서도 건강 잘 지키세요~ 방문 댓글 감사합니다^^

  4. 주연공대생 2019.12.12 14:37 신고

    포스팅 잘보고 공감하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he_hesse 2019.12.12 17:53 신고

      감사합니다! 주연공대생님도 남은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5. 세싹세싹 2019.12.12 17:58 신고

    와 바람부는날 비행이라니 걱정되기도하지만 멋지시네요~!

  6. 주연공대생 2019.12.12 20:08 신고

    파일럿이시군요 !!ㅎㅎ
    잘보고 공감하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7. 오렌지훈 2019.12.12 21:43 신고

    잘 보고 공감하고 갑니다^^
    좋은 하루보내세요~

  8. I부자아빠I 2019.12.12 22:54 신고

    쉽진 않으시겠어요 안전비행하세요~^^

    • he_hesse 2019.12.13 03:12 신고

      방문 댓글 감사합니다^^ 부자아빠님 즐거운 하루 되세요!

  9. jshin86 2019.12.13 01:01 신고

    와! 비행을 하신다니 정말 대단한거 같습니다.

    바람불고 천둥치는 그런날에 비행기 안에 있었던 경험이 있는데 정말 무섭고 싫더라구요.

    • he_hesse 2019.12.13 03:13 신고

      맞습니다~ 그래서 기상상황이 늘 중요한..! 방문 댓글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심보선의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를 읽다. 심보선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시를 통해서였다. 나는 그의 시를 좋아한다. 시집 하나를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시 하나를 찾기 어려운데 그의 시집에는 마음에 드는 시가 여러 편 들어있다.

 

나는 그의 시를 필사하기도 하고, 소리내어 읽어보기도 한다. 지금 읽고 있는 시집도 그의 <눈앞에 없는 사람>이고, 내가 애정하며 읽는 시집 가운데 하나도, 그의 <슬픔이 없는 십오초>라는 시집이다.

 

 

그의 산문을 읽은 것은 처음이었다. 표지의 그림과, 표지에 적힌 글씨체가 눈길을 끌지만 무엇보다 심보선이라는 이름에 혹해 골라들었다. 사회학을 전공한 그 답게, 그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과 그 속에서 자신이 겪는 상황들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고 무거운 것은 아니다. 그의 글은 가볍고, 또 가독성도 좋아 쉽게 잘 읽힌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사회학자들을 인용한 부분도 교양 수준으로, 흥미를 자아낸다.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챕터별로 그 글이 묶인 공통된 이유는 없다. 다만 1부와 2부에 비해 3부의 글들은 사회에 관한 시선과 표현이 구체적이 된다. 더 정치적으로, 더 감정적으로 글의 구체성은 불어난다.

 


 

그의 시를 좋아하는 나는 그의 문장이 좋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산문이 읽기 쉽고, 내용은 흥미로울지라도 내게는 다소 거리감이 들고 어떤 부분은 불편하기까지 했다. 어떤 부분이 그런가 가만히 살펴보니 성찰(省察)의 핀트가 나와 달랐다.

 

산문집으로 모음될 수 있는 대부분의 글들은 그 안에 크고 작은 메세지가 있다. 그러한 메세지는 글쓴이가 '무엇인가를 보고', '느낀' 것이기에 자성(自省)의 성격을 띤다. 어떤 일에 대해 미래를 말하기보다 과거의 일에 대해 '이러했다' 내지 '이러했어야 했다'가 산문의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산문을 읽다보면 공감을 자아내는 글이 있는가 하면, 십분 양보해서 공감을 부러 해야 하는 글이 있다. 아니면 백번을 양보해도 공감이 되지 않는 글이 있다. 사실, 심보선의 산문은 내게 공감을 부러 해야, 해지는 글에 가깝다. 그래서 읽으면서 문장들은 가독성이 좋았으나, 문단들은 잘 읽히지 않았다.

 

심보선의 글 중, 수필에서의 문장과 시에서의 문장은 다르다. 수필에서의 문장이 내용을 드러내기 위함이면, 시에서의 문장은 그 반대의 성격을 띤다. 자신의 생각을 곧이곧대로 전달하려는 산문과, 은연중에 드러내려는 시.

 

더 나아가 시는 드러내기보다는 감추기에 더 능(能)한 갈래이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숨겨져 있는 작가의 자성을 좋아했다. 거기에는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고, 여러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의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가 그의 여타 시집들과는 달리, 나에게 거리감을 안겨준 것은 그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나의 생각이 들어갈 틈이 없고, 틈이 있다손 내가 들어간 그 문단에는 나와 공감을 견줄만한, 공통된 자성 포인트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생각들은 곧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한 생각으로 이어지는데 어떤 사이이든 '코드'가 맞아야 '코드가 맞는 사이'라는 것. 동어반복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이 사이는 살면서 결코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이이며, 결국 만나게 되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이 관용어가 되지 않을 만큼, 찾기 힘든 관계다.

 

취미와 관심사가 같은 것에 더 나아가, 웃음이 터져 나오는 유머 코드나 재미 포인트가 맞아야 하고, 감동을 받는 부분도 얼추 맞아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 시선을 표현해내는 방식 역시 맞으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까. 애석하게도, 그러한 지엽적인 것(그러나 본질적이고, 소중한 것)이 어슷비슷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그런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관계가 다치지 않도록, 열심히 만나야 한다. 열심히 만난다는 것은, 만남의 빈도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그이에게 나아가는 속도에 그이가 다치지 않을까 염려하며, 그이에게 나아가지 못하는 시공간에 쉽게 슬퍼지거나 기운 빠지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1. 2019.12.10 16:58

    비밀댓글입니다

    • he_hesse 2019.12.10 18:13 신고

      누구나 그런 것 같아요. up and down! 힘내세요. 저는 그럴 때는 독서보다는 산책하는 게 더 좋더라구요~ 걸으면서 생각도 정리되고, 운동도 되구요!

  2. sotori 2019.12.10 19:51 신고

    글 쓰시는 스타일이 깔끔하고 읽기 좋네요^^
    잡지의 한소절을 보는것 같아요^_^

    • he_hesse 2019.12.11 07:52 신고

      잘 읽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셔요!

  3. 나우고 2019.12.10 20:15 신고

    코드가 맞는게 중요한거 같습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

    • he_hesse 2019.12.11 07:53 신고

      그렇죠~ 코드가 맞는 사이. 많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방문 댓글 감사드려요~

  4. 오렌지훈 2019.12.10 20:39 신고

    잘 보고 공감하고 갑니다^^
    좋은 하루보내세요~

  5. 주연공대생 2019.12.10 22:07 신고

    포스팅 잘보고 공감하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 he_hesse 2019.12.11 07:53 신고

      감사합니다~^^ 주연공대생님도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6. ele_sso 2019.12.11 05:01 신고

    책 표지가 정말 예쁘네요 ㅎㅎ
    한번 읽어보고싶은 책이에요
    공감하고 갑니다 :)

    • he_hesse 2019.12.11 07:54 신고

      글도 한편한편 다 짧아서 금방 읽힐 거예요~ 한번 읽어보세요^^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 되세요!

  7. 휴식같은 친구 2019.12.11 08:44 신고

    산문집이군요.
    타인의 생각을 엿볼수 있는 기회가 이런 산문집의 매력이 아닌가 싶네요

    • he_hesse 2019.12.12 07:09 신고

      맞습니다. 그래서 산문집은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방문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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