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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이야기

블로그와 글쓰기에 대하여

by hehesse 2019.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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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어느덧 블로그를 시작한지 한달이 조금 지났다.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무엇인가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서른이 되었고, 이 상징적인 숫자 앞에서 하루하루 나의 생각과 이야기를 남겨보자는 계획이었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이와 이야기를 하면서 이것이 기실 숨고르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른까지 쉼없이 달려오면서 잠시 쉼표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쉼표 덕분에 나는 매일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우선 내가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마음 먹은 것은 하루에 글 한편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것도 최소 2,000자 이상의 글을. 왜 2,000자냐고 하면 이 역시 상징 같은 건데, 200자 원고지 10매 분량이면 적어도 하나의 글이 군더더기 없이 나오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매일, 이냐고 하면 음.. 그래보고 싶었다. 하루하루 스스로에게 과업을 부여하고, 해내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던 것이다.

 

지난 한달 간 하루에 최소 하나의 글을 꾸준하게 썼다. 내 스스로에게 당일의 마감시간을 부여하며, 하루의 일정 시간을 글쓰기로 보낸 것이다. 그러다보니 하루 일과가 규칙적으로 흘러가게 되었고 어딘지 착실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내 하루일과는 착실하고도 단조로운데 간단히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트레칭과 요가로 하루를 시작한다. 명상을 겸한 요가는 몸과 마음을 가라앉게 한다. 단순해 보이는 동작들도 복근에 힘을 주고, 어깨를 빼지 않고, 정상 호흡을 하면서 자세를 취하면 결코 쉽지 않다. 십중팔구 처음에는 호흡과 자세가 엉망이다. 그러다가 곧 안정적이 되며 몸 곳곳이 제 위치를 찾아가는 느낌이 든다.

 

스트레칭과 요가가 끝나면, 밥을 짓고(쌀을 씻고, 안치고, 밥솥 버튼을 누르고) 샤워를 하고 출근 준비를 한다. 밥이 다 되면 아침을 먹고 설거지 후 출근.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와 간단한 맨몸운동을 하고, 씻고, 저녁을 먹고(이따금 밖에서 사먹기도 하고)침대에 누워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선잠에 들기도 하다가.. 저녁 10시 즈음에 스탠드를 켜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을 다 쓰고 여러번 읽은 후 다듬으면 자정에 가까운 시간. 다음날 아침 7시로 예약발행을 하고 잠에 든다.

 

최근에 글을 쓰는 공간. 식탁 겸 책상.

거의 변하지 않는 이 생활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물론 여러 변수가 있기는 하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일과의 내용이 달라진다. 하지만 아이들을 재우고 글을 쓰는 것은 변함이 없다.

 

글쓰기에 대하여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꾸준히 글을 썼다. 아버지께서 선물해주신 롱펠로우의 <인생찬가>라는 시집에 감명을 받아 그 시를 필사한 것이 첫 시작이었다. 그러다가 시를 써보고 싶어졌다. 곧 롱펠로우 풍(風)의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중학교 1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 어느 사설 도서관에서 빌린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언젠가는 이런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에밀싱클레어와 나를 동일시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막스 데미안에게 편지를 쓰고는 했다. 내 인생에서 데미안 너는 언제 등장할까.. 너를 기다리고 있어. 라는 중2병 감성이 풍부한 문장을 꼭 넣어가면서.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친구 지호로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추천받아 읽게 되었다. 헤세의 소설을 읽을 때처럼,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 내 인생의 데미안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했다.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소설을 썼고 그렇게 첫 소설 <초.침>이 탄생했다. 문장도 길고, 주인공들 역시 전형적인 인물이었지만, 그리고 내용 역시 특출날 게 없었지만 뿌듯했다. 원고지 491매의 장편소설이었다.

 

그 후, 한편의 장편소설을 더 쓰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1년이 흘러 수험생활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소설을 썼다. 무엇이 되고자 쓴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이미 벌어졌지만 사실은 이렇게 벌어졌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일들에 대해, 늘 찬밥인 주변인들과, 상황에 따라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인물들에, 눈물 많은 이들에 대해, 전쟁 속에 살아가야만 하는 늘 힘겨운 평화주의자에 대해, 더 많이 사랑해서 늘 데는 사람에 대해 주구장창 썼다.

 

물론, 주구장창이라 하지만 하루종일, 몇 날 며칠을 붙잡고 쓴 것은 아니다. 학부생활, 동아리 생활, 여행 등의 주된 일들 사이의 빈 시간마다 틈틈이 썼다.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결혼 전까지 책을 읽고, 글을 썼던 공간

그러다가 대학교 3학년 때, 나는 결혼을 했다. 아내는 내가 글을 쓰는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내의 표현에 의하면 한심해보이고 없어보인다는데, 그 의미는 아마.. 뭔가 다른 일을 하기 원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일평생 소설을 읽지 않았고, 읽지도 않을 아내에게는 소설 쓰는 남편이 참 이해가 안 가고 답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여가는 오로지 소설쓰기여서 한동안 모른체 하고 내 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썼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쓰는 모습이 죽어도 싫다기에 나는 3년 전에 아주 글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무엇인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펜을 놓은 대신, 만년필과 크레파스, 붓을 들었다. 여가시간에 그림을 그렸지만.. 아내가 그림이나 글이나 무엇이 다르냐며 이마저도 별로 좋지 않게 보았다. 글과 달리 그림은 재료값이 든다고 더욱 마뜩잖게 생각했다. 1년 정도 크레파스, 수채화, 아크릴화를 그리다가 이마저도 그만 두었다.

 

크레파스로 처음 그렸던 그림. 그 후로 크레파스로는 10여 개의 그림을 그렸다.

 

다시 글을 쓰면서

 

그러다가 한달 전쯤에, 나는 내가 썼던 글들을 한번 출력하여 제본을 하고 싶어졌다. 10여년간 컴퓨터도 두 차례나 바뀌어 모든 글을 모으지 못했지만, 그래도 모으고 분량을 헤아려보니 200자 원고지 6,747매, 135만 9,400자의 글자를 썼다. 소설과 별개로 쓴 일기까지 하면 아마도 더 되지 싶다. 분량이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만 내게 저 글자수들은 시간을 의미했다. 그러니 저 활자의 숫자는 내 생(生)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숫자들이다.

 

제본을 하니 다섯 권이 나왔다.
두께는 이 정도.

그리고,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제본되어 나온 예전 글들을 보며, 쓴 글들은 이렇게 쌓이는구나, 그때 쓴 글에는 그때의 내가 있구나, 느껴졌다. 소설은 더이상 쓰기 어렵지 않을까? 지난 소설에 대해서는 몇편의 애정하는 소설을 추려 인쇄를 해 볼 예정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주 종목이었던 소설과는 또 다른 글을 쓰려 한다. 잔잔한 수필 내지 내 의견이 반영된 논설문, 사실확인을 필수로 한 정보글들. 이렇게 글을 쓰다보면, 또 쌓이고 쌓일 것이다. 그러다보면 새로 쓰게 된 이 분량들은, 새로이 늘어날 활자수들은 또 다시, 내 삶의 바로미터로 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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