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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이야기

고슴도치 이야기

by hehesse 2019.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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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첫째와 함께 책을 하나 읽는다. 읽을 때마다 어른인 나도 허가 찔리는, 오르다 작은 철학자 시리즈. 이번에 읽게 된 책은  <고슴도치 이야기>이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가 자신의 저서에서 사용한 고슴도치 우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고슴도치의 딜레마라고도 알려져 있는 고슴도치 우화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정거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슴도치란, 사람에 다름 아니다.

 

한겨울 고슴도치 두 마리가 있다. 둘은 너무 추워 서로에게 다가가지만 곧 가시에 찔려 고통스러워한다. 그래서 결국 아프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자 다시 추위가 엄습해온다. 그런 과정의 반복을 통해 춥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그러나 아프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를 서로 찾는다. 그 적절한 거리를 통해 두 고슴도치는 덜 춥고, 덜 아픈 사이가 된다.

 

그 내용을 첫째와 함께 읽는다.

 

고슴도치 이야기. 추워서 표정이 저런걸까, 아니면 따끔거려서 저런걸까. 추위이든 아픔이든 고슴도치는 두려움에 가득 차 보인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더 추운 것 같아."

"그래, 둘이서 꼭 붙어 있으면 따뜻해질 거야, 이리 와 봐, 이리 와 봐"

 

"앗, 따가워, 이게 뭐야?"

"저리 가! 가시에 찔렸잖아!"

 

추위를 견디기 위해 가까이 다가간 두 고슴도치는 가시에 찔려 고통스러워한다.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게.

 

결국 그 둘은 적정거리를 찾는다. 덜 아픈, 그러나 조금은 더 추운. 반대로 덜 추운, 그러나 조금은 더 아픈. 그러니까 이 이야기에서 나온 문장처럼,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를.

 


 

"지호야.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중요한 거야. 그 거리를 찾는 것도, 유지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지."

 

첫째가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다만, 아이가 살면서 불가피하게 겪게 될, 겪고야 말, 그리고 겪어내야만 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비롯되는 화상(火傷)과 동상(凍傷)이 치명상으로 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었다.

 

그런데 아이의 입에서는 뜻밖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빠.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서로 가까워도 아프지 않을 수 있어요."

"응? 어떻게?"

 

 

"여기 보세요."

 

지호가 고슴도치의 배 부분을 가리킨다. 그리고 손 끝으로 매만지며 말한다.

 

"분명. 가까이 있어도 상대방을 아프지 않게 하는 부위가 있을 거예요."

 

"그걸 알면,

춥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게 정말로 가까이 있을 수 있어요."

 

그 말에 마음 한 구석에 무엇인가 꿈틀대었다. 나는 아들의 말에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 라며 대답했고  아이가 한 말을 오래도록 되뇌었다. 그렇다면 고슴도치 우화는 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용기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몰랐다.

 

나의, 상대를 아프지 않게 하는 부위(생태계에서는 자신의 무기가 없는, 그러니까 약점 중의 약점)를 상대에게 알려줄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상대의,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 부위를 알아가기 위해, 나를 아프게 하는 가시에도 기꺼이 찔릴 수 있는 그 용기를. 그런 용기들이 결국, 지호의 말처럼 우리를 가까이 놓아도 아프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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