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일과를 끝내고 퇴근을 하려는데, 후배 한명이 나를 보자마자 대뜸 '설리가 숨진 채로 발견되었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평소에 이 친구와는 이런 유의 대화를 하지 않았었는데 그런 비보를 전하는 후배를 보며 나는 순간 '설리', '죽음'이라는, 두 단어를 조합해봤지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리가 죽었다고? 조금 이따가 그 문장이 내게 이해가 되면서 오래 전 내 마음을 울렸던 두 공인의 죽음이 스쳐갔다. 장국영의 죽음과 이은주의 죽음. 그 후에도 수많은 이들이 눈을 감았겠지만 내가 좋아했던 공인이 숨을 거두는 것은 지금 돌이켜봐도 슬픈 일이다. 더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은.
설리에 대하여
일명, '노브라 사건'으로 설리는 선정성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악플을 달았고, 무차별적으로, 가차없이, 가해지는 그러한 공격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는 화면 너머에서 얼굴을 가리고 키보드를 타이핑하지만, 그러한 누군가가 한두명이 아닐 경우에, 그 공격의 대상이 되는 '한명'이 과연 그 공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 더욱이 양도 양이지만, 수위가 조절되지 않는 그 더럽고 지저분한 악플들에.
내가 그녀의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것은 그것이다. 악플러들은 그녀를 너무나 함부로 대했다. 살아있는 인격체라고 생각을 했다면 악플을 남기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런 비열한 행동을 그만했겠지. 더욱이 그녀의 부고 기사에 대해 악플을 남기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설리를 살아있는 인격체로 대하지 않았던 그들이야 말로 살아있는 인격체라 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녀가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사진을 찍은 것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다. 자신이,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옷을 입고, 자신이 촬영한, 자신의 사진을, 자신의 공간에 올리는 게 도대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더러는 말한다. 그녀는 공인이라고. 그러므로 그런 '선정적'인 사진을 그런 SNS에 올리면 안 된다고. 선정적? 언제부터 그들은 그렇게 고상하고, 우아하고, 정숙하게 굴었기에 선정성을 언급할 수 있는 걸까. 그 선정성을 판단해서 목에 칼을 들이미는 권한은, 그 기준은 누가 부여했는가. 사람들. 정말. 막. 살고, 막 쓴다. 쓰레기들이다.
그녀가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사진을 찍어 올린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정이 없지만(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게 관심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것.)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삶에 대해서는 나는 찬성한다. 속옷은 신체를 보호하는 등의 여러 기능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신체 일부를 구속하기 때문에 혈관이 눌릴 수밖에 없다.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는데 하루 24시간 평생을 혈관이 눌리는 삶을 살게 되면 신체에 이상이 올 수밖에 없다. 혈액순환 장애에 가까운 삶인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선정적이라고, 수많은 이들에게 입방아를 찧이면서 지탄을 받아야 할 일인가? 그녀의 '선정성'을 갖고 악플을 달았던 사람들이, 그녀의 자살을 두고 악플을 단다. 그건 명백한 사자명예훼손죄이며, 이러한 죄명을 부러 달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하지 말아야 하는, 어떤 선이라는 게 있고 그 선을 넘어가는 패륜이다.
설리를 추모하며
나는 자살이라는 행동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자살한 이는 가슴 깊이 이해한다. 해서는 안되지만, 마지막으로 자신이 한 능동적인 행위이며, 그 행위란 결국 지옥같은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죽은채로 사느니, 죽음을 선택한 것이었을 것이다.
남은 우리가 해야할 일은 숨을 거둔 그녀를 온전히 추모하는 일이다. 기실, 별이 되어버린 그녀에게 가 닿을 수 없다지만 마음 깊이 그녀의 명복을 빌어주는 것이다. 그녀가 이 세상에 존재했던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딘가에 그녀의 온기가 남아 있을 것이라 믿고, 시간이 흘러도 그녀를 찾아보고, 기억해주는 것이다. 때로는 이 추모가, 우리를 슬픔에 잠기게 할 때도 있고, 외려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겠지만, 응당 그래야 한다. 살아서도 살지 못했던 이를, 비록 유명을 달리했으나 오래도록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미약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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