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hesse 2019. 9. 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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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고등학교 친구 범수를 만났다.

 

점심 무렵, 청계천 트리에서 만나 교보 방면으로 이동했다. 일민미술관 1층의 <카페 이마>에 들어섰다가, 사람들이 꽤 있어 다시 나왔다. 곧 광화문 우체국 옆의 <스타벅스>에 들어섰다. 우리는 음료를 시켜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2년 전 어느 날 광화문 교보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마주쳤으니 8년 만의 만남이었다. 그때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고 또 2년이 흘렀다.

 

범수는 내게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내가 시간에 좀 강해. 공간보다는. 공간에 약하다는 건 아니고. 너를 그때 만난 건 2017년 7월이었어.' 시간이라는 단어에 미소가 지어졌다. 시간은 내 관심분야다. 오래 전부터 관심 있었지만, '관심분야'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에 강하'다니. 그런 표현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표현에 대해 이야기하니 범수가 말한다. 자기도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데 내 앞이어서 그런지 그런 표현이 나왔다고.

 

2017년 7월. 어느덧 2년 2개월이 지나가버렸고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본질, 페르소나, 연애,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고자 했던 날들, 결혼 등에 관한 이야기. 내 결혼이 자못 그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었나보다. 정상적인 범주 내의 결혼도 아니었고, 때도 일렀다. 내 결혼 소식을 들은 것이 훈련소에서라고 하니, 어쩌면 그 비현실감과 거리감은 더 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제각기 다른 공간에서, 다른 공간의 삶을 전해 들을 때 당혹스러워한다. 더구나 같은 시간이라면 더더욱.

 

스타벅스에서 나와 광화문 교보로, 광화문 교보에서 서소문으로 향한다. 그곳에서도 우리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한때 그가 공부했고, 돌아다녔던 공원은 어느덧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새로이 바뀐 공간에 대해 그는 여러 생각에 잠긴 듯하다. 우리는 또다시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라고는 범수와 호겸, 승준과 지호가 다다. 지호는 기숙사 생활을 했을 때의 친구였고, 나머지 셋은 새로 전학간 곳에서 만난 친구다. 호겸과 승준은 같은 이과였기 때문에 2년간 붙어살다시피 했고 범수는 문과였기 때문에 우리는 겹치는 시공간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지금까지 연락이 닿고, 또 만나서 이야기하게 된 것일까?

 

그에게 어떤 동의가 필요한 부분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고등학교 내내 그가 나와 닮았다고 생각하며 지내왔다. 이과에는 내가 있고, 문과에는 그가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우선 샤프하고 지적으로 생긴 그의 모습이 좋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의 아이가 대개 그렇듯, 호감이 가고 호기심이 들수록 먼저 말 걸기가 주저된다.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수줍음 때문이다. 그러다가 그와 함께 서오릉에 간 적이 있었다. 백일장 대회에 같이 나간 것. 그때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는, 여태껏 마주치고 스쳐간 가운데 가장 오랜 시간을, 한 공간에 같이 있었다.

 

그것이 연이 되었던 걸까. 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우리는 종종 근황을 묻고 답하며, 만나기까지 하며 그 관계가 유지되오고 있는 것. 그나 나나 모두 백일장에서 인연이 깊어진 탓일까. 지금까지도 우리는 서로가 쓴 글을 본다. 나는 당시 문학에 '꽂혔었고' 그 후로 그와 관련된 직업을 전전했다. 그는 시사와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고, 글에 관한 한 프로페셔널한 직업을 가졌다. 어렵다던 언론고시를 패스해 그는 오래도록 기자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기사들을, 그리고 이따금 화면에서 비치는 그의 모습과 육성을 볼 때마다 나는 멀리서 지만 연결되어 있다고 믿고는 했었다.

 

그도 나도, 다시 글을 쓰는 자리로 돌아간다. 그도 글을 쓰고 있을 것이고, 나 역시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우리는 또 서로의 글을 볼 것이고, 또 서로 만날 것이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이렇듯 이따금씩 만나는 만남에 나는 늘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렇게 하루치의 행복을 또 보장받는 것이다.


범수와 나
나도 너처럼 안경 벗고 다시 찍자! 해서.
우리가 마신 음료. 범수는 연유가 들어간, 나는 카페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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