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라인은 무엇을 견인하는가, 견인해야 하는가
헤드라인(Headline)에 관하여
기사를 볼 때 눈에 가장 처음 들어오는 부분이 헤드라인이다. 헤드라인을 먼저 읽고 관심이 가면 그 아래의 내용을 자세히 읽고, 관심이 없으면 지나간다. 헤드라인은 기사의 구성 중 글씨가 가장 크고, 주로 문장보다는 단어들로 이어져 강렬한 인상을 준다.
최근에는 종이신문보다는 인터넷 신문을 많이 본다. 인터넷 신문에서도 이러한 헤드라인의 역할은 두드러진다. 복잡하고 다양한 정보를 내보내고 있는 인터넷 화면에서, 기사가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은 사진과 제목 정도가 되겠는데, 사진의 게시 공간도 할애받지 못한 기사들은 어떻게든 제목으로 자신을 어필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제목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경향을 띤다. 자극적이라고 해도 그 자극성이 기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팩트에 부합하다면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자극성이 팩트와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라면 이는 분명 잘못된 것. 역설적인 것은 여기서 발생하는데, 이 자극적인 제목이 팩트에서 벗어나는지의 여부는, 그 제목을 클릭하고, 개인의 시간을 투자해야만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일 관심이 없는 주제거나, 기사를 읽을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결국 헤드라인(인터넷 신문 상의 제목)이 기사의 내용과 동일해져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헤드라인은 무엇을 견인하는가
정론적으로 이야기하면, 헤드라인은 읽는 이에게 기사의 내용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읽는 이가 기사 내용에 더 가까이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혹여 기사를 정독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기사의 내용을 왜곡하고 호도할 수 없도록 기사의 핵심이 헤드라인에 담겨야 한다. 즉, 헤드라인은 자신의 기사 전체를 견인해야 하는 것.
하지만 현재의 헤드라인들은 기사가 아닌, 독자의 발걸음을 견인하고 있다. 강 건너 불구경을 잘 할 수 있도록, 망원경을 건네고 더 나아가 불구경을 잘 볼 수 있도록 다리를 내어주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게 독자가 발걸음을 옮겨 막상 가보면 불이 아니라 물인 경우도 있고, 큰불은 다른 편인 경우도 허다하다. 비유가 그렇다는 것.
서로 다른 헤드라인들
하나의 사건을 갖고도 어디에 주안점을 두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헤드라인이 나올 수 있다. 어떤 사건으로 예를 들까 고민하다가, 최근 읽고 있는 책도 우주고 하니 인류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였던 인류의 달 착륙에 관한 헤드라인을 찾아보기로 한다.
1969년 인류가 최초로 달에 착륙했을 때, 예상되듯 모든 언론사가 이를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각 신문마다 캐치해낸 헤드라인은 달랐다. 다음을 보자.
워싱턴 포스트는 다음과 같은 헤드라인을 내걸었다. 'The Eagle Has Landed' - Two Men Walk on the Moon.
사실에 입각한 헤드라인이다. 사령선인 컬럼비아에서 분리된 달착륙선 이글 호가 달 표면에 착륙했다는 사실과 두명의 사람이 달 표면을 걷는다는 내용. 그 둘은 닐 암스트롱과 올드린일 것. The Eagle Has Landed라는 표현은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했을 때 발언한 내용이다.
미국의 풍자 언론사 디 어니언 사는 인류의 '속마음'을 저렇게 헤드라인으로 걸기도 했다. 인류가 달에 착륙했을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놀라움과 경악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 풍자성 짙은 뉴스를 전달하는 신문사여서 가능했었겠지만, 저런 비속어를 대문짝만한 글씨로 전면에 내세우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달 착륙은 세계적 이슈였으니, 이 회사는 달 착륙에 대한 정보 전달이 목적이 아니었을 것이고 독자들의 공감을 일으켜 판매 부수를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필라델피아 도심지역에서 발행되는 조간 신문, 더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헤드라인은 무난하다. Man Lands On Moon에서 알 수 있듯, 달에 착륙하고 있는 상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eagle이 아닌 man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과학으로서의 지구 발(發) 물체가 지구 이외의 천체에 닿은 것이 아닌, 사람이 달에 닿은 것에 표현이 집중되어 있다. 여기서의 man은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뉴욕타임즈에서는 land가 아닌 walk를 썼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인식의 전환이다. land가 달에 닿기까지의 상황이라면, walk는 달에 착륙하고 난 이후의 상황이다. land가 기계적 행위라면, walk는 인간적 행위다. 지극히 지구적인 것. 더 나아가 walk는 단순히 걷다의 의미만 갖는 것이 아니다. 이 단어는 나아가다, 활동하다, 성취하다 등의 수많은 단어들의 본보기이다. 물론 당시에는 달에 착륙한 것과 달을 걷는 것은 둘 모두 천지개벽할 만큼 놀라운 사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는 우주탐사로서 이루어낸 성과를, 다른 하나는 앞으로 이루어낼 성과를 암시하고 있는 것.
이렇듯, 하나의 사건을 두고도 다양한 헤드라인이 나올 수 있다. 그만큼 헤드라인은 기사의 내용을 견인하고 있으며, 기사가 갖고 있는 방향성과 정체성을 견인해야 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어느 기사 하나
헤드라인에 대해 이런 글을 쓰게 된 데에는 최근에 본 다음의 기사에 그 이유가 있다.
'장성규, 합정 메세나폴리스 '배달 갑질' 논란'
이 제목만 본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많은 이들이 장성규라는 방송인이 배달 갑질을 해서 논란과 물의를 일으켰다고 생각할 것이다. 바쁘지 않거나 평소에 장성규의 방송을 애청했던 이라면 무슨 일인지 알기 위해 클릭을 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이라면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머릿속에는 일순간 '장성규라는 방송인, 방송을 참 재미있게 잘하더니 이런 모습도 있구나!'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팩트는 그렇다. 장성규라는 방송인이 '워크맨' 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길치가 배달알바하면 생기는 일.avi'라는 제목의 배달 알바 편을 찍었다. 내용에 의하면, 그가 합정의 메세나폴리스 13층에 배달을 가는데 3층까지만 운행하는 엘리베이터에 탔다가 3층에서 내린다. 우연히 25층에 사는 입주민의 도움을 받아 고층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지만 이 엘리베이터는 25층으로만 운행한다. 입주민 전용 태그키로만 운행되기 때문. 그리하여 결국 그는 25층에서 내려, 13층까지 걸어 내려가게 된다.
그러며 논란이 된 것은(혹은 논란으로 만든 것은) 메세나폴리스의 이러한 구조가 배달 갑질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1. 헤드라인(제목)에서 짐작되는 내용과는 전혀 상관 없는 기사내용이 문제다.
2. 갑질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냐는 점. 메세나폴리스의 입주 관리 정책은, 입주민들의 관리비로 운영된다. 그렇다면 입주민들의 안전과 편의가 우선으로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관리 정책 하에서 배달의 묘를 찾는 방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
3. 하지만 드러나 있지 않은 점. 메세나폴리스에는 배달원 전용 출구가 있고, 이 출구를 이용하면 모든 층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배달원 전용 출구에 대해 미인지한 상태에서 배달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다. 그러나 제대로 사실확인이 안된 상태에서 쓴 기사로 메세나폴리스가 논란의 중심이 되었고, 기사의 내용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한 헤드라인 때문에 장성규의 이미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끼쳐졌을 것이다.
글을 맺으면, 헤드라인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그 함축된 내용은 기사의 내용과 부합해야 하며 사실관계와도 어긋나서는 안 된다. 헤드라인은 무엇을 견인하는가, 와 무엇을 견인해야 하는가는 사실 나뉘어질 수 없는 물음이다. 이렇게 물음을 나눠 드러낸 것은, 실상 헤드라인들이 마땅히 견인해야 할 바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것. 헤드라인은 사실의 적시를 바탕으로, 지어져야 한다. 펀치라인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이 헤드라인에는 있어야 한다.